신용기록 없는 자에게 신용을 주지 않는 역설
연말 금융권의 '대출 셧다운'이 또다시 사회초년생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신용대출 평균 신용점수가 900점을 넘어섰다는 소식은, 이제 청년들에게 제도권 금융의 문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것이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회초년생의 불합리한 신용평점 부여 문제가 제기된 지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현행 신용평가 시스템은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이른바 '씬파일러(thin-filer)'들은 신용을 평가할 데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낮은 신용등급을 받는 경우가 있다. 신용 이력이 없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고, 대출을 받지 못하면 신용을 쌓을 수 없는 악순환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이 취업 준비나 전세 보증금을 위해 소액이라도 빌리려 하면, 금융권은 "당신의 신용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딛지도 못한 이들에게 어떻게 금융거래 이력을 증명하란 말인가?
규제는 강화되고, 대안은 없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6·27 대책 이후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중금리대출 취급액이 37.2%나 급감했다. 그나마 중·저신용자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2금융권마저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 약관대출까지 총량 관리 대상에 포함되면서, 청년들이 갈 곳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규제 당국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가계부채 관리는 분명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규제만 강화하고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 취약계층에게 전가된다. 실제로 올해 1~10월 불법사금융 단속 검거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83%나 급증했다. '즉시 대출', '무심사 승인'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청년들이 연 7만%의 이자와 잔혹한 불법 추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금감원 불법사금융 민원 70% 이상이 청년층이다.
대안신용평가다.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바로 '대안신용평가(Alternative Credit Scoring)' 시스템이다. 기존의 금융거래 이력 외에도 통신요금·공과금 납부 이력, 학력, 재직 정보, 소득 추정치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신용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FICO Score XD, 중국의 지마신용 등 해외에서는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부터 신용평가사들이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도입했지만, 그 활용도는 여전히 부족하다. 금융회사들이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새로운 시도에 따르는 위험을 회피하려는 보수성이 가장 크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30년간 방치해온 구조적 불공정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청년에게 기회를, 사회에 미래를
대안신용평가 확대는 단순히 청년들의 대출 접근성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공정성과 세대 간 형평성의 문제다. 부모 세대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금융환경에서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벽에 가로막힌다.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월세로 내몰리고, 취업 준비 자금이 없어 기회를 놓치고, 급기야 불법사금융의 덫에 걸려 인생이 망가진다.
금융 당국과 금융회사들은 더 이상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안신용평가를 적극 도입하고, 청년 특화 중금리 대출 상품을 확대하며, 씬파일러들의 신용 이력 구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2금융권의 중금리 신용대출을 규제 예외로 인정해달라는 업계의 요구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30년을 끌어온 문제를 이제는 해결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불법사금융이 아닌 제도권 금융의 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이 사회가 미래 세대에게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신용평가 시스템의 혁신 없이는 금융 포용도, 사회 통합도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

역시 믿을 건 나경원 의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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